현실적인, 너무나도 현실적인 - 이어즈 앤 이어즈
이어즈 앤 이어즈는 영국 BBC와 HBO에서 공동 제작한 6부작 드라마로, 매력적인 근미래 디스토피아 장르물입니다. 닥터 후 메인 작가가 각본을 맡아 유명하며, 국내에서는 왓챠 플레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등장인물
뮤리얼(앤 리드)
스티븐, 이디스, 대니얼, 로지의 할머니로 라이언 가문의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입니다. 불만이 많은 성격으로 매일 투덜거리지만 손자들을 매우 사랑합니다. 함께 살게 된 스티븐의 아내 셀레스트와 마찰이 있지만 결국에는 그녀를 이해하고 감싸줍니다. 마치 영국 여왕 같은 모습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단호하고 변함없는 인물이죠.
스티븐 라이언(로리 키니어)
라이언 가문의 첫째이자 중산층의 그는 금융전문가로, 런던에서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회 문제에 관해서는 언제나 무관심하고 회의적입니다. 중도 보수층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 그는 딸과 아내한테 지고 사는 평범하고 유순한 가장입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이성적이고 옳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의 인생은 한꺼번에 뒤집히고 맙니다.
이디스 라이언(제시카 하인스)
라이언스 가문의 둘째로 불의를 참지 못하는 여성입니다. 사회문제에 앞장서서 시위하며,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불법도 마다하는 매우 급진적인 사회운동가입니다. 심지어 레즈비언 연인까지 있는데요. 굉장히 신념이 뚜렷한 사람으로, 시대의 아이콘이 된 그녀는 이어즈 앤 이어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합니다.
대니얼 라이언(러셀 토비)
라이언스 가문의 셋째입니다. 시청에서 일하는 주택 관리원으로 난민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게이이며 초등학교 교사인 남편 랠프가 있습니다. 사회문제에 불만이 많고 자신만의 논리적인 신념이 꽤 뚜렷합니다. 그러나 다만 이디스처럼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 빅토르와 사랑에 빠지면서 그는 점점 바뀌게 됩니다.
로지 라이언(루스 매들리)
라이언스 가문의 막내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입니다. 미혼모로 학교 식당에서 일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느라 재정상황은 좋지 않은 듯 보입니다. 굉장히 터프하고 생각 없이 말을 함부로 하는 스타일이지만 정이 많습니다. 신념은 뚜렷하지만 이성적이지 않아 남들에게 잘 휩쓸립니다. 정치적으로는 극우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셀레스트 (트리아 밀러)
스티븐의 아내로 유능한 회계사입니다. 아주 우아하며 지적이고 똑똑한 여성입니다. 그러나 가족을 통제하려고 하는 면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라이언스 저택에서 뮤리얼과 사사건건 부딪히곤 합니다.
베서니(리디아 웨스트)
스티븐과 셀레스트의 첫째 딸로, 컴퓨터 기기를 다루는데 익숙하며 매우 똑똑합니다. 인간 육체에 대해 회의적이고 IT기술을 선망합니다. 때문에 가족들에게 트랜스 휴먼이 되고자 하는 꿈을 공표합니다. 이러한 그녀의 정체성 때문에 갖은 사고들이 벌어지는데요. 그녀는 새로운 디지털 세대의 표상입니다.
루비(제이드 앨린)
스티븐과 설레스트의 둘째 딸입니다. 베서니와 다르게 평범한 삶을 삽니다.
빅토르 고라야(막심 밸드리)
우크라이나에서 망명 온 난민입니다. 대니얼의 남자 친구가 되며, 결국에는 라이언스 가문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비비언 룩(엠마 톰슨)
기업가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황당한 공약은 물론 정치인 답지 않은 거친 말솜씨로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습니다. 코미디언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녀는 사실은 뛰어난 선동가입니다. 지독하고 시니컬한 현실주의자로, 이어즈 앤 이어즈 전반을 이끌어나갑니다.
2. 줄거리
이야기는 2019년부터 2034년까지 동안 정치인 비비언 룩의 등장과 함께 라이언스 가문 및 영국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비비언 룩은 극 전반 내내 파격적인 발언과 행동을 합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예인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비비언 룩의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의 모 정치인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처음에 대중들은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비웃거나 무시하지만 점점 그녀에게 환호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그녀는 영국 수상으로 당선이 되는데요. 과연 비비안 룩이 집권하는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요? 그리고 라이언스 가문의 남매들은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맞이하게 될까요?
3. 감상평
공포물일까? SF물일까? 혹은 다큐멘터리일까? 이어즈 앤 이어즈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드라마이자 SF, 블랙 코미디 장르이지만 저는 공포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디스토피아적인 근미래를 보여주는 이어즈 앤 이어즈는 놀랍게도 지금의 우리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에 더욱더 현실적이고 무섭게 다가옵니다. 이어즈 앤 이어즈는 현재의 정치와 기술, 사회, 경제환경 등의 다양한 이슈가 어떻게 나비효과처럼 가까운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드라마의 중심을 이끄는 라이언스 가문은 매우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각자 보수층, 게이, 장애인, 사회운동가, 중도층, 진보좌파, 극좌파, 극우파, 중산층, 지식인, 노동자, 난민, 신인류, 구인류, 백인, 유색인종 등등 영국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사회 구성원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이런 다양한 계층들이 서로를 혐오하는데 힘을 쏟다 보면 정치에는 무관심해집니다. 정치인은 어쩌면 그것을 원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무자비하고 절대적인 권력가는 힘을 얻게 되니까요. 그 안에서 우리는 절대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혐오할 수 있다면 내가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급변하게 되면서 정책에 무관심했던 중산층은 노동자 계층이 되어서야 자신이 안일했음을 압니다. 행동하지 않고 그저 세상을 비판하기만 했던 지식인은 사회문제를 눈앞에서 겪고 나서야 자신이 비겁했음을 압니다. 세상을 혐오했던 소외계층은 자신들이 혐오당하며 쫓겨나서야 자신이 무지했음을 압니다. 혐오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결국에는 우리 모두는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부디 다가오는 미래는 부디 혐오의 미래가 아니길 바랍니다. 마지막에 뮤리얼이 이디스를 부르는 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것 같네요. 들리니? 이디스? 여러분도 들리나요? 다가오는 미래의 목소리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