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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끔찍하고 아름다운 환상 - 비바리움

잘자라는스투키 2021. 4. 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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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사육장이라는 뜻의 비바리움은 이상할 정도로 완벽한 타운형 단지 욘더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한 커플이 욘더에서 원치 않게 길을 잃고 벗어나려고 분투하지만 도저히 벗어날 수 없어 결국 정착하게 되는데요. 이런 와중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상황들을 그려냈습니다. 과연 그들은 욘더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요?

 

1. 등장인물

톰(제시 아이젠버그)

톰은 장난스럽고 철이 없지만 자신의 일은 열심히 하는 정원사입니다. 땀냄새나는 셔츠를 대충 입고, 지저분한 자동차를 아무렇게나 몰며, 생각보다 행동부터 앞서는 사람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반 남성이지요. 사랑하는 여자 친구 젬마와 함께 살 집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젬마(이 머진 푸츠)

어린이집 교사인 젬마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배려심이 많은 여성입니다. 그녀는 다른 여느 여성들처럼 마음이 약하고 감성적이며, 때로는 남자 친구를 닦달하며 통제하기도 하고, 또 어느 면에서는 의존적이기도 하죠. 거리를 지나가다 아름다운 마을인 욘더 홍보물을 보고 이끌려 톰과 함께 부동산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2. 줄거리

같이 살 집을 구하던 톰과 젬마는 어느 날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욘더라는 마을의 9호 집을 소개받습니다. 그러나 욘더는 신기하게도 톰과 젬마가 소개받은 9호 집과 똑같은 집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그들은 서둘러 돌아가고자 하지만, 어느새 자신들을 데려와 준 부동산 중개인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들은 중개인을 찾아 헤매지만 어디에도 없습니다. 결국 스스로 이 마을을 벗어나가고자 하지만 아무리 걸어가도 제자리로 돌아올 뿐입니다. 결국 지친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 살아가기로 합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먹을 음식과 물건들이 그들 모르게 아침에 배달이 되곤 하는데요. 끔찍하게도 아무 맛이 없는 음식들입니다. 괴로워하는 톰과 젬마. 그런데 다음날 식량이 배급되는 박스 안에 또 다른 선물이 있는데요. 바로 아이입니다. 세상에, 살아있는 아이라니요. 심지어 이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만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는데요.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 그들이지만 아이를 키워야만 이 끔찍한 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마음에 아이를 억지로 키우게 되는데요. 과연 그들은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이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3. 감상평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집! 욘더의 집은 겉으로 보면 이상한 것이 없습니다. 깔끔한 신축 주택에 가구며 침구 등 모든 것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신혼부부들에게는 환상의 집이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너무나 이상한 집입니다. 기묘한 이 영화를 보면 볼수록 욘더는 현실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약속된 완벽한 집은 마치 정부가 신혼부부에게 제공하는 모기지론 같더군요. 아름다운 신혼과 달콤한 미래를 꿈꾸는 신혼들에게 주어지는 족쇄지요. 마치 신혼부부를 인구 생성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정부의 주택정책을 보는 듯합니다. 남녀 간의 결합을 단지 사회 시스템을 굴러가게 하는 도구로만 인식하는 현 세태의 인간소외를 말하는 것 같지요. 특히 이런 시스템에 떠밀려 생각 없이 결혼하게 되는 일반 남녀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보듯 준비되지 않은 결혼은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처음에는 톰과 젬마는 함께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서로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희망은 점점 사라집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똑같은 집뿐입니다. 방향도 모릅니다. 사람도 없습니다. 마치 힘든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지만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도 모르겠고,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맛없는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무뎌지던 둘은 점차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톰은 보통의 남편처럼 바깥일에 집착하며 집안일을 신경 쓰지 않지요. 매일같이 정원에 출석하여 구덩이를 팝니다. 어딘가에 이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요. 반면 젬마는 체념한 채 집안일만 신경 쓰게 됩니다. 때문에 집안일은커녕 바깥일만 신경 쓰는 톰이 원망스러울 밖에 없습니다. 둘도 없던 커플은 그렇게 쉽게 멀어집니다. 사랑스러웠던 서로가 이제는 동반자가 아니라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그때 갑작스럽게 생긴 아이는 부부를 더욱더 고통 속에 빠트립니다. 계획에도 없는 임신을 상징하는 것이겠죠. 이 조그마한 칩 입자를 톰과 젬마로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안 그래도 지옥 같은 삶인데 말이죠. 그러나 톰은 그런 아이를 괴물처럼 혐오하며 더욱 바깥으로 내외하는 반면, 젬마는 톰 대신 아이에게 의존하며 그런대로 고통스러운 하루를 견디죠. 사회에서 강요하는 일반적인 모성을 말하는 걸까요. 그러나 아이가 자라면 자랄수록 가족은 분해됩니다. 아이는 어느새 쑥쑥 커버려 다른 사람처럼 되어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어릴 때는 겨우 통제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통제조차 할 수 없습니다. 톰과 젬마는 점점 통제할 수 없는 삶에 절망을 느낍니다. 심지어 톰은 마지막 희망이었던 구덩이에서 시체를 봅니다. 이 집에 있던 다른 부부의 시체지요. 그들은 여기서 아이를 키우다가 죽은 겁니다. 그들은 아이를 통해서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애초부터 출구는 없었습니다. 아이는 두 부부를 양분 삼아 자신의 세계로 날아갈 뿐입니다. vivárĭum은 라틴어로, 동물사육장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처럼 비바리움에서 톰과 젬마는 동물을 사육하듯 양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저 시스템의 도구입니다. 가정이라는 달콤한 허상에 묶여 인구 생산이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요. 아이를 키우고 나면 이 의미 없이 반복되는 삶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가고 남은 그들은 죽음만이 앞에 있습니다. 비바리움은 이렇게 사회구조에 의해 되풀이되는 허무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데요. 물론 인간의 삶을 너무 단편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사는 대로 사는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무한 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가정의 굴레를 냉혹하게 보여주는 영화, 비바리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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